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드윈 파월 허블 (문단 편집) === 외부 은하의 발견 === 당시 천문학계는 외부 은하의 존재 여부를 놓고 [[대논쟁(천문학)|대논쟁]]을 벌이고 있었다. [[할로 섀플리]]는 우주의 곳곳에서 발견되는 소위 '''나선 성운'''[* 당시엔 은하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Nebula라고 불렀다. 간혹 나이 드신 분 중엔 아직도 성운이라고 얘기하는 경우가 존재할 수도 있다.]이라 불리는 천체들이 우리 은하 내에 있는 천체들이라는 생각을 했다. 이에 대항하는 헤버 커티스는 [[임마누엘 칸트]]의 '섬 우주 가설'에서 출발한 외부 은하 가설을 주장했다. 이 아이디어는 우주의 전체라고 여겨지고 있었던 우리 은하가 우주에 퍼져 있는 수많은 은하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파격적인 주장이었다. 양측 주장에는 각각 그럴듯한 근거가 존재했기 때문에 논쟁을 결판내기 위해서는 실제 거리를 측정하면 될 일이었다. 윌슨산 천문대에 근무하던 허블은 M31 안드로메다 성운을 관측하던 도중 '세페이드 [[변광성]]'을 발견하게 되고, 이를 바탕으로 거리를 구할 수 있었다. 이렇게 측정된 거리는 약 150만 광년[* 실제로는 250만 광년 떨어져 있다. 당시의 측정 기술의 한계에 따른 측정 오차가 있다.]. 현대의 측정 결과에는 약간 못 미치지만 당시 추정하였던 우리 은하의 크기(약 10만광년)에 비해 너무나도 먼 거리에 있었던지라 안드로메다 성운이 외부 은하라는 것은 확실히 밝혀진 셈이 되었다. 이 발견으로 에드윈 허블은 일약 대스타로 거듭나게 된다. 그리고 천문학의 흐름을 유럽 위주가 아닌 미국 위주로 돌려세운 시작점이 되는 사건. 허블의 발견으로 인해 [[대논쟁(천문학)|대논쟁]]은 결국 커티스 측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다. 과거 [[토성]]까지가 [[우주]]라고 생각하던 시대에서 다시 [[명왕성]], 그리고 우리 은하 내의 일부에서 다시 우리 은하 밖의 또다른 우주로 인식이 확장된 인류 전체의 대사건이다. 이후 허블은 계속해서 관측을 거듭하던 중, 은하들의 형태에 규칙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[[허블 분류]]를 고안하게 된다. 다만 처음 허블은 이 분류를 은하의 진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었으나 현재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